2002년 독립해 아시아에서 가장 젊은 국가인 동티모르에 ‘9월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130만명이 넘는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인 이 나라에 사상 처음으로 교황의 발길이 닿은 것이다.
9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순방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오후 동티모르에 도착했다. 올해 87세로 건강이 좋지 않은 교황은 앞서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를 거쳐 동티모르를 찾았다. 이 나라의 가톨릭 신자 수천명이 바티칸시티 교황청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흰색이 뒤섞인 우산을 든 채 공항 근처로 몰려들어 교황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냈다.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AFP에 “저와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순간”이라며 “동티모르 국민 모두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티모르에 11일까지 사흘간 머물 예정이다. 10일에는 야외에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할 계획인데 현지 당국은 무려 70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모여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동티모르 전체 국민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동티모르 국민들은 미사를 통해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꺼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동티모르 20여년의 역사상 교황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접에 총 1200만달러(약 16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동티모르가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700여달러에 불과하고 인구의 약 40%가 빈곤층이란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사나나 구스마오(78) 동티모르 총리는 직접 주민들과 함께 시가지 청소에 나서는 등 교황 방문 행사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동티모르는 16세기 초 포르투갈 무역상과 선교사들이 섬에 상륙하며 유럽 대륙에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다. 포르투갈은 18세기 초 동티모르를 자국의 식민지로 삼고 1970년대까지 300년 넘게 지배했다. 포르투갈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동티모르 주민들이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끝에 1975년 포르투갈 세력은 철수하고 동티모르는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그 직후 인근 인도네시아의 공격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군의 동티모르 점령이 완료된 뒤인 1976년 7월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자국의 27번째 주(州)로 편입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통치는 오래갈 수 없었다. 주민들의 독립운동이 확산한데다 국제사회도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1970∼1990년대 인도네시아의 탄압으로 희생된 동티모르 주민은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유엔이 개입해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동티모르 그리고 유엔까지 4자 협의체가 가동에 들어갔다. 국제사회의 규탄을 견디다 못한 인도네시아는 1999년 1월 “동티모르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바로 평화와 독립이 동티모르에 찾아든 것은 아니었다. 친(親)인도네시아 세력이 반기를 들면서 일종의 내란이 발생했다. 이에 유엔이 다국적군을 파견해 동티모르의 치안을 유지하고 나섰다. 한국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상록수부대를 동티모르에 파견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주둔시킨 바 있다. 동티모르는 2002년 5월 정식으로 독립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