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박수 좀 주세요! 로봇이 마라톤을 완주하고 있습니다!” 17일 오후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가 시작된 지 4시간 20분이 가까워질 무렵 상주시민운동장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승전을 앞두고 마지막 코너를 도는 마라토너 사이에서 4족 보행 로봇 ‘라이보2′가 달리고 있었다. 최종 기록은 4시간 19분 52초. 로봇이 42.195km 일반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주한 것이다. ‘라이보2′에는 완주 메달도 걸렸다.

‘라이보2′는 카이스트(KAIST) 황보제민 교수 연구팀이 개발했다. 로봇의 마라톤 완주는 도로 장애물을 피하고 주변 마라토너의 움직임을 김지하며 한 번 충전으로 40km 이상 달렸다는 의미다. 연구팀 관계자는 “야간 경계, 험지 순찰, 배달 등 다양한 실용 분야에서 로봇의 기술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말했다.

상주 곶감 마라톤은 14km 지점과 28km 지점에 고도 50m 수준 언덕이 2회 반복되는 코스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도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행 로봇에게는 예상치 못한 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도전적인 과제였다. 마라톤 코스는 주변에서 같이 달리는 연구원이 무선 장치로 명령을 내려 방향 전환을 지시했다. 몸통 앞과 꼬리에 달린 2대의 카메라가 주변 지형 지물을 감지했다. 또 관절에 달린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해 전력 소모량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4족 보행 로봇은 최근 모래, 얼음, 산지 등 다양한 지형에서 성능을 입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바퀴 기반 주행 로봇에 비해 주행 거리와 운용 시간이 짧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가상 환경에서 경사, 계단, 빙판길 등 다양한 환경을 갖춰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도록 ‘라이보2′를 학습시켰다. 특히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베터리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해 구동 시간을 늘렸다.

‘라이보2′도 마라톤 완주에 실패하며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지난 지난 9월 ‘금산 인삼축제 마라톤 대회’에서 첫 도전에 나섰지만 37km 지점에서 배터리 방전으로 완주에 실패했다. 실험실 예상보다 10km 일찍 배터리가 소진된 것이다. 연구진은 “실제 마라톤 코스에서 다른 주자들과 어울려 달리다 보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감속과 가속을 자주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후 연구팀은 내부 구조를 개선해 배터리 용량을 33% 늘리는 등 기술적 보완에 주력했다. 개선된 라이보2는 평지에서 직선으로 달릴 경우 최장 67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한 번 충전으로 최장 8시간까지 달릴 수 있는 라이보 2의 ‘지구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경호 임무에 도입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인 사족 로봇과 달리 인공지능(AI)을 접목한 기술 덕분이다. 라이보2 관련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이충인 박사는 “예를 들어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베터리에 저장하는 기술은 AI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단순히 앞으로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바퀴와 달리 4족 보행이 가능한 동시에 에너지를 저장하게 만들려면 고도로 발달한 AI의 제어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4족 보행 로봇이 외부 부품이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제한적인 개선만 가능한 것과 달리 황보 교수 연구실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라이온로보틱스’와 공동 개발해 기구 설계부터 인공지능까지 모든 영역을 자체 개발하면서 종합적 발전이 가능했다. 이 박사는 “마라톤 완주를 통해 도심 환경에서 라이보2가 안정적으로 배달, 순찰 같은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산악, 재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보행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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