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해외 빅테크와의 경쟁 대신 협력을 택하고 있다. 카카오가 자체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에 오픈AI의 GPT 시리즈를 활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해외 AI 기술을 적극 도입한 통신 3사처럼 여러 AI 모델을 골라 써서 비용을 절감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이다.
10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향후 공개할 AI 서비스에 GPT 시리즈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1분기 비공개 이용자 테스트를 목표로 하는 AI 에이전트 ‘카나나’가 대상이다. 카나나는 대화 내용을 분석하거나 문서 요약 정보 등을 제공하는 카나, 이용자 상황을 인지하고 먼저 말을 거는 나나라는 에이전트 2종을 활용한 서비스다. 카카오톡에 이 기능을 적용해 이용자 맞춤 e커머스 서비스를 내놓을 방침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지난 7일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자체 생성 모델부터 미세 조정한 오픈소스 모델, 해외 빅테크 모델 등을 AI 허브 플랫폼에 적용해 누구나 AI 서비스를 개발할 때 적합한 모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의 지난 3분기 광고 커머스 사업 매출은 5073억원이었다. 카카오는 카나나 등 GPT를 접목한 AI 서비스를 통해 이 사업 매출을 두 배 이상 늘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대표는 “카카오톡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도입하려고 한다”며 “볼거리와 재미를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가 GPT 시리즈를 쓰려는 건 AI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AI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러 악기를 쓰는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AI 모델을 서비스 기능에 맞게 골라 쓰는 전략이다. 범용 AI 모델 대신 크기와 학습물이 다른 AI 모델들을 활용하면 서비스별 연산에 필요한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작업 속도를 개선할 수 있다. 카카오가 지난해 10월 범용 AI 모델 ‘코GPT-2.0’을 공개하려다 취소한 배경이다.
카카오는 AI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AI 모델을 세분화했다. 소형 언어모델 ‘나노’, 중소형 언어모델 ‘에센스’ 개발을 마쳤다. 초거대 언어모델 ‘플래그’는 개발 단계다. 이미지 생성 모델 ‘콜라주’와 동영상 생성 모델 ‘키네마’, 음성 인식 모델 ‘카브’, 음성 생성 모델 ‘캐스트’ 등도 준비하고 있다.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도입한 업체는 카카오뿐만이 아니다. 2028년까지 AI에 2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 LG유플러스도 구글과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인 ‘익시젠’을 두고 있음에도 해외 빅테크와 손을 잡기로 했다. 사내 영업 시스템엔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의 AI 기술을 도입했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브릭스 등과 협업해 기업용 AI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AI 에이전트 ‘에이닷’으로 오픈AI, 퍼플렉시티, 앤스로픽 등의 AI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에선 자체 LLM 개발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기술 열세를 인정하고 해외 빅테크와 협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체 AI 모델로 생성 AI 사업을 전개하는 주요 기업은 네이버뿐이다.
ICT업계 관계자는 “포털·메신저 시장 생태계가 형성된 2000년대와 비교하면 최근 AI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막대한 투자 없이는 기술을 따라가기 어렵다 보니 빅테크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해외 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오픈AI는 219억달러(약 30조6500억원)를, 앤스로픽은 97억달러(약 13조5800억원)를 투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