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는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 하나가 펼쳐진다.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한 남성이 두 팔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더니 용수철처럼 펄쩍펄쩍 뛰며 분위기를 달군 것이다.

이런 ‘활기찬’ 행동은 지지자들로 꽉 찬 대선 유세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진짜 독특한 일은 남성이 입은 회색 티셔츠에 있었다. 티셔츠에는 ‘화성 점령(Occupy Mars)’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다뤄지는 미 대선 유세장에서 화성 점령은 그동안 인기 있는 얘깃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남성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인 측에 선거 중 1억1900만달러(약 1660억원)를 기부했고, 유세장에 직접 나가 연설까지 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 공언한 대로 그를 정부 규제를 축소하고 예산을 줄이기 위한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난주 지명했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수장에 오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우주 사업에 대한 공적 규제가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전이나 환경 보호를 위한 제도적 검토와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고, 기술을 낮은 가격으로 빠르게 발달시키는 일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우주 개발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는 다른 방식이다. 앞으로 인류의 지구 밖 진출은 어떻게 전개될까.

‘스타십’ 겨냥 규제 축소 전망

우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차세대 핵심 발사체인 ‘스타십’은 향후 시험발사 주기가 크게 단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타십은 지난해 4월 처음 시험발사됐으며, 18일 6차 시험발사가 예정돼 있다.

스타십은 화성을 겨냥한 대형 교통수단이다. 한 번에 100명을 태울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어떤 우주 발사체도 사람을 10명 이상 태운 적이 없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머스크는 스타십 시험발사에 적용되던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각종 규제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머스크는 지난 9월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를 통해 “스타십 프로그램이 매년 증가하는 정부 관료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머스크가 X에 게시글을 올린 시점에 앞서 FAA는 환경 영향 등을 고려하겠다며 스타십 5차 시험발사 승인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같은 달에는 스페이스X가 또 다른 로켓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안전 요구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63만3000달러(약 8억8600만원)의 벌금 부과 방침도 발표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텍사스 환경품질위원회(TCEQ)는 지난 9월 총 15만달러(약 2억1000만원)의 벌금을 스페이스X에 부과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가 스타십 이륙 때 나오는 엔진 화염을 식히기 위해 발사대에 뿌리는 다량의 물이 텍사스 주변 바다로 흘러들어가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센터장(전 한국항공대 교수)은 “머스크 입장에서는 정부 규제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머스크가 규제 당국을 제어할 정부효율부 수장이 된 이상, 스타십 시험발사 앞에 놓인 ‘바리케이드’가 대거 치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화성행 우주버스 등장 당겨질 듯

시험발사가 잦아지면 스타십의 상용화 시점 역시 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기업연구소(AEI) 등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상용화한 스타십의 1㎏당 발사 비용은 2030년대에 수백달러(수십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낮은 비용은 스타십이 여러 번 회수해 반복해 쏘는 ‘재사용 발사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국가나 기업이 쓰는 일회용 발사체는 스타십보다 많게는 100배 이상 돈을 써야 비행이 가능하다. 장영근 센터장은 “스타십이 상용화하면 다른 우주 기업들이 발사체 시장에서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십 상용화는 화성 진출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다. 스타십처럼 싼값으로 로켓을 쏴야 사람과 물자를 자주 화성에 보낼 수 있고, 거주지를 신속히 건설할 수 있다. 수년 전 머스크는 2050년까지 100만명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는 2028년까지 승무원이 탄 스타십을 화성에 쏘겠다고 했다.

이창진 명예교수는 “현재 NASA에서는 무인 탐사선이 아니라 사람을 화성에 보내는 논의는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면서 “만약 미국 우주정책 중심이 ‘인간의 화성 진출’로 바뀐다면 머스크가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타십과 함께 스페이스X의 통신 사업인 ‘스타링크’도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스타링크는 기지국 역할을 하는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다수 쏘아 올려 전 세계 어디에나 인터넷 연결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통신 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도 얼마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농부가 작물 위에 물을 뿌리듯 스타링크용 위성은 사용자의 수백㎞ 상공에서 인터넷 연결용 전파를 쏜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용 위성을 2019년부터 현재까지 6000여기 쐈다. 2027년까지 총 1만2000여기를 띄울 예정이다.

스타링크는 이미 효용성을 입증했다. 2022년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지상 통신 시설이 파괴되자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은 전투의 기본인 통신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를 선언한 지난 6일 연설에서 스타링크가 자국 수해 현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머스크를 가리켜 “특별한 사람이며 천재”라고 추켜세웠다.

“머스크, 우주 제국 황제 가능성”

머스크의 예고된 질주에 과학계 일각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발사체 시장 전체를 스페이스X의 스타십이 독점할 가능성 때문이다. 독점은 문제를 부른다. 스페이스X는 기술 혁신을 통해 스타십 발사 비용을 최대한 낮춘다는 방침을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경쟁할 기업이 전혀 없는 시장 환경에서도 저가 방침을 지속적으로 고수할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장영근 센터장은 “독점 상태가 되면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발사 비용을 10분의 1만 줄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적으로는 더 낮출 수 있는 발사 비용을 기업 이익 극대화를 위해 충분히 낮추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수장으로서 활동을 본격화하면 스타링크용 위성에 대해 최근 제기되는 규제 강화 목소리도 수면 아래로 잠길 것으로 보인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우주법 전문)는 “현재 지구 저궤도에는 위성들이 혼잡스러울 정도로 많다”며 “우주 교통관리에 대한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9년부터 발사된 스타링크용 위성 6000여기는 고도 600㎞ 이하 저궤도에 집중 배치돼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력자로 등장한 머스크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스타링크용 위성 숫자를 줄이거나 더 늘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에 주목할지는 의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우주과학계에서는 수명을 다한 스타링크용 위성이 대기권에 돌입하며 연소할 때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위성 동체를 이루는 금속이 대기권에 흩뿌려지면서 햇빛을 우주로 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지구 냉각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을 들여다보자는 논의 또한 ‘규제’로 취급될 공산이 크다.

김한택 명예교수는 “머스크는 위성 발사 속도를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면 중국 등 다른 국가들까지 가세한 발사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 권력에 이어 정치 권력까지 거머쥔 머스크는 스타십과 스타링크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를 통하지 않고는 지구와 우주를 오가거나, 지구 밖에서 정보를 교환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장영근 센터장은 “화성 개척을 포함한 전반적인 우주 탐사 활동을 스페이스X가 사실상 장악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머스크는 우주 제국의 황제가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