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특허 전쟁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건재함을 드러내는 기술 기업이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전문 기업 서울반도체다. 최근 이 회사는 유럽 특허청 항소재판부의 판결을 끝으로 대만 LED업체 ‘에버라이트’와 7년간 벌인 16차례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고 밝혔다. 올해 초에는 글로벌 정보기술(IT) 대기업인 아마존을 상대로 스마트 조명 기술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3일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유럽 특허청 판결에 대해 “디스플레이 성능은 물론 사용자 안전까지 획기적으로 높인 노와이어(No Wire) LED 기술이 유럽 모든 국가에서 특허를 인정받게 된 것이라 의미가 깊다”라고 설명했다. 노와이어 LED 기술은 전선(와이어)과 패키징 없이 LED 소자를 만드는 것으로, 초소형과 고효율을 장점으로 한다. 제네시스 GV80과 아우디A4 차량의 헤드 램프에도 이 기술이 쓰였다.

지난 10일에는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독일 대형 유통사인 엑스퍼트 이커머스의 판매 제품이 서울반도체의 와이캅 기술을 침해했다며, 유럽 8개국에 관련 제품 판매 금지와 폐기 처분을 명령했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UPC 판결 중 가장 많은 국가에 판매금지 등이 내려진 것”이라며 “해당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제품으로 특허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한 획기적 결과”라고 했다

백전무패 신화 계속1992년 설립된 서울반도체는 글로벌 LED 시장에서 일본 니치아와 독일 오스람에 이은 세계 3위 업체다. 지난해 매출 7억8400만 달러(약 1조506억원)를 기록했다. 조명과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적용되는 LED 제품과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광(光) 반도체 전문 기업이다. ‘특허 경영’으로 LED 시장을 평정하겠단 창업자 이정훈 대표의 목표에 따라 특허 확보에도, 특허 침해시 소송에도 적극적이다. 중소·중견기업으로선 특허 소송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존폐의 위기가 될 수 있지만, 서울반도체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백전무패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2006년 세계 1위 LED 기업인 일본 니치아가 제기한 소송부터였다. 급성장하는 한국 중소기업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니치아 소송에서 이긴 이후 현재까지 8개국에서 진행된 103건(9월 기준)의 특허 소송에서 서울반도체는 모두 이겼다. 2020년 LED 전구와 LED TV 등을 두고 필립스와 벌인 소송에서도 연거푸 이기자, 업계에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미국 ‘특허 괴물’로 불리는 다큐먼트 시큐리티 시스템즈(DSS)와도 4년간 싸워 2021년 최종 승리했으며, 일본 렌즈 제조기업인 엔플라스와는 6년 분쟁서 승기를 잡았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100건이 넘는 송사에서 번번이 승소하자 직원들은 피로감보다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특허 소송 백전백승, 비결은서울반도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광고를 냈다. “Birth is not fair, but opportunity must be fair”라는 문구가 적힌, 즉 ‘출생은 불공정해도,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평소 “특허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며, 작은 기업도 거대한 기업으로 클 기회를 준다”라고 강조해왔다고 한다. 특허를 사수하는 게 단순한 기술 보호 차원을 넘어, 공정한 경쟁과 창의적 혁신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정훈 대표가 ‘특허 침해 기업을 모두 뿌리 뽑을 때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화는 업계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기술 전시회나 실적 발표회에 긴 생머리를 질끈 묶고 등장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일본 니치아와의 소송 땐 꼭 이기겠다는 의지로 회사 로비 바닥과 직원들 의자에 니치아 로고를 깔아 밟고 앉는 이벤트도 벌였다.

물론 기술력에 대한 자신 없이는 하기 어려운 행보다. 서울반도체에 따르면, 회사는 매년 매출액의 10%인 1억 달러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현재 회사가 보유한 특허가 1만8000여개, 그중에서 이정훈 대표 개인 특허가 269건이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개발직군 직원 개개인의 목표에 특허 아이디어 제출 항목을 넣어 관리하고 있다”라며 “대표이사부터 말단 사원까지 모두 발명에 몰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반도체만의 독보 기술인 썬라이크(자연광 스펙트럼에 가장 가깝게 만든 LED), 와이캅 등이 그렇게 나왔다.

지난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마이크로 LED 기술과 관련해 서울반도체가 보유한 특허는 1000여 개에 이른다. 마이크로 LED는 디스플레이나 조명 등에 쓰는 초소형 LED로, 기존 LED보다 작으면서도 밝기와 색재현성, 전력 효율이 뛰어나다. 이정훈 대표는 지난 8월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우리의 특허를 피해 마이크로 LED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자신했다. 업계에 따르면 기존 디스플레이는 마이크로 LED로 대체될 전망으로, 향후 10년 내 디스플레이 시장의 20%를 차지(300억 달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반도체의 무패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현재 30여 건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반도체가 아마존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소개한 WSJ는 지난 3월 보도에서 “이 회사는 5년간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여러 회사를 상대로 특허 침해에 대해 15건의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라며 이 회사의 소송전에 주목했다. 지난 8월 실적발표회 때 아마존과의 소송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이정훈 대표는 “잘 (해결)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