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부터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세기의 재판이 남프랑스의 아비뇽 법정에서 열리고 있다.

한 여성을 10년(2011~2020) 동안 50명의 남자가 강간했다. 그들을 그녀의 집에 끌어들인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71세)는 아내 지젤(72세)에게 약물을 복용시켜 의식을 잃게 한 후, 만남 사이트 coco.fr 에서 접촉한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강간을 저지르게 해왔다. 그 사이 자신은 범행 장면을 촬영해 사진과 비디오 형태로 보관했다.

성도착증과 관음증에 사로잡힌 괴물들의 엽기 행각으로 보도되던 이 사건은 재판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50인의 남자들이 증언대에 설 때마다, 여성의 몸을 자신들의 사유물로 취하고 지배해온 ‘보편적 남성연대’의 민낯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위 ‘문명사회’라는 거죽 아래 완고하게 머물고 있는 가부장제의 야만성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 변화의 중심에는 “수치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말하는 피해자 지젤 펠리코가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덜미가 잡히다

남자의 오랜 범행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된 곳은 뜻밖에도 한 슈퍼마켓이었다. 관음증 환자인 도미니크 펠리코는 그곳에서 여성들의 치마 밑을 비디오로 촬영하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된다. 경비원이 여자에게 그를 고발하겠느냐 물었고, 여자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도미니크 펠리코는 그 자리에서 체포된다.

경찰은 그의 핸드폰과 컴퓨터를 압수해 들여다 보았고, 그가 ABUS(성적 남용)이라 이름 붙인 파일에서 49명의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92차례에 걸쳐 아내(당시 58세~68세)를 강간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모든 내용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해 두었다.

아내 지젤은 경찰에 의해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성적 학대를 겪어온 아내 지젤은 성관계로 감염되는 여러 산부인과 질환에 시달려 왔고, 남편이 자신도 모르게 투약시킨 고농도 신경안정제로 몸은 급격하게 쇠약해져 갔다. 그러나 건강 약화의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부부에겐 세 자녀와 여러 손자들이 있었다. 도미니크 펠리코는 손자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그들과 운동과 여가를 즐기는 사랑받는 할아버지였다. 이웃들과도 함께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밝은 노인이었다. 그는 심지어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와 50년 동안 행복한 삶을 누려왔다고 말한다. 젊었을 땐 전기 기술자로, 중년 이후엔 부동산 중개사로 일해오며 가정을 돌보아왔던 그에 대해, 아내 역시 이 사건이 드러나기 전까진 완벽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착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이었던 그는 자신으로 인해 병에 시달리는 아내가 의사를 만나러 갈 때 수차례 동행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약을 먹이고, 의식을 잃은 그녀를 마주하면, 그는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만남 사이트 coco.fr(현재는 폐쇄된 상태)에 가면 이러저러한 변태 성욕을 가진 사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잔디 깎기 같은 간단한 일거리를 제시하고 대가로 아내를 하룻밤 제공하겠다는 말로 사내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뒤틀린 성욕을 충족시켰다. 때론 자신이 직접 아내를 강간하고, 찾아온 남자들에게 그 장면을 촬영하게 하기도 했다. 10년간 거침없이 엽기 행각을 벌여온 그는 법정에서 모든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저기 앉아 있는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강간범입니다 (…)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인 줄 알지만, 아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자신과 일상의 자신을 분리하며, 자신 또한 피해자였음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9살 때 치료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 한 남자 간호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13살 때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 여성을 상대로 여러 명의 남자가 벌이는 집단 성폭력을 목격해야 했다. 그때의 이미지가 이후 평생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고 진술한다.

“그것은 지니고 살기에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는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 죄 없는 아내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우린 변태 성욕자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살면서 변태 성욕자가 된 것입니다.” 자신을 변호하며 한 말이다. 그의 증언에 대해 정신의학자들은 “그가 어릴 때 당했다고 주장하는 성폭행이 그의 자아를 분열시켰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도미니크 펠리코를 포함 13명의 남자들이 어린 시절 성범죄의 피해자였음이 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범행을 부인하는 남자들

주범 도미니크 펠리코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 것에 반해, 범행에 가담한 49명의 남자들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의 쟁점도 이 부분에 달려있다. 26-73세에 이르는 이들(범행 당시엔 22~67세)중 37명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군인, 경비원, 소방관, 간호사, 판매원, 배달 기사, 화물차 기사, 배관원, 기자, 은퇴자, 무직 등 다양하고 평범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는 없었으나, 모두 여성의 몸에 대해 지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일부는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만, 다수는 남편 펠리코가 꾸민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부부가 동의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그들의 침대에 초대되었다고 인식했다거나, 지젤이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는 식이다.

하지만, coco.fr 사이트에서 도미니크 펠리코가 열었던 포럼 제목 자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A son insu)’였다. 펠리코는 행위에 가담한 모든 남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자리에 초대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확언한다. 그는 집에 온 남자들이 최대한 조용히 옷을 벗고, 그녀가 깨어나지 않도록, 손을 따뜻하게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향수사용 등을 피하도록 꼼꼼히 코치하면서, 공동의 완전 범죄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제목은 있으나, 내용물이 없는 두 개의 파일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그 두 사람은 도미니크의 제안을 거절한 예외적 인물들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처음엔 부부의 합의 하에 3인의 성행위를 제안하는 것으로 이해하다가, 아내가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을 것임을 알고 거절했다고 말한다. “상대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는 범죄이기도 하고, 여성의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행위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마냥 결백한 존재들은 아니다. 범죄가 저질러지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왜 경찰에 알리지 않았느냐는 피해자 측 변호인의 질문에 “결혼한 남자로서, 그 사이트에 들락거렸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런 일이기도 하고” ” 워낙 미친놈들이 많은 사이트여서, 어떤 놈이 헛소리를 하나보다” 하고 넘겼다고 답했다.

지난 9월, 재판이 시작되면서, 프랑수아즈라는 가명으로 보도되던 사건은 실명보도로 전환되고, 모든 재판 과정이 완벽하게 공개로 되며, 피해자의 모습이 가감 없이 노출되도록 보도 패턴이 전환된다. 이는 피해자 지젤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언론에 범인들을 악마화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고,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범행 가담을 거절한 두 사람을 포함한 그 모든 남자들 중, 사건을 경찰에 알린 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지적한다.

지젤이 얼굴을 가리거나 실명을 숨기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법정에 서서 큰 소리로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이 태초부터 많은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약물을 먹인 후, 다른 이들에게 그녀의 몸을 제공하고, 남편이 제공한 여자의 몸을 여러 남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전혀 근절된 바 없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을 향한 폭력성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거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인식시켜, 그 일상적 사고의 잔인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 그녀의 뜻이다.

법정에서, 마치 자신들이 지젤에 의해 함정에 빠진 피해자인 척 변명하는 자들의 증언은 그녀를 격분시켰다. 지젤은 그들의 뻔한 궤변도, 그 궤변에 귀 기울이며 남성 공조를 이어갈 태세를 갖춘 사회도 용납할 마음이 없었다.

“수치심은 가해자의 몫이어야 한다”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용감한 전사로 거듭난 지젤 펠리코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그녀의 변호사가 선택한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이후, 언론과 그녀를 위한 집회 현장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녀는 이젠 전 남편이 된 도미니크가 잘 정리해 둔 범죄의 증거들을, 재판장에서 청중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부인하고, 변명하며, 빠져나갈 수 없도록. 일부 비정상적 인간들의 극단적 일탈이 아니라, 공고한 남성 연대가 여성의 몸을 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한 여성 노인이 남편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뻔히 알고 있던 수많은 coco.fr 사이트의 이용자들, 70대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심쩍은 현상들을 목격한 의료인들. 가부장제의 중력 속에 길들여져 있던 그들은 이 상황을 방관했다. 이 사이트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지 않았던 경찰도 고발이 있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았다. 치마 속을 도촬 당한 여성의 고발이, 그 평범한 용기가 없었다면, 모든 범죄자들은 아무 일 없이 자신들의 범죄를 오늘도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지젤의 결단은 프랑스의 국내 여론은 물론, 국경을 넘어 세계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 9월 13일엔 파리, 마르세유를 비롯, 프랑스 전역 30개 도시에서 성범죄에 맞서 싸우는 상징적 투사가 된 그녀를 응원하는 시위가 열렸다. 집회를 취재한 영국의 뉴스채널 <스카이뉴스>는 “그녀의 결단에 따라, 언론은 그녀의 실명을 공개하고 법원은 남편이 촬영한 노골적인 동영상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 투명성을 선택했고, 이후 그녀는 프랑스에서 성폭력에 맞서 싸우는 상징이 되었다”라고 보도했다. <가디언>도 “영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3%만이 재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재판의 모든 과정이 온전히 공개될 것을 희망한 지젤 펠리코의 결정이 이러한 상황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적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여성 단체는 그녀를 지지하기 위해 선물과 편지를 전해오기도 했다. “우리는 지젤 펠리코에게 연대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성폭력에 저항하는 그녀의 공개적인 입장에 존경을 표합니다. 그것은 매우 용기있는 일입니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성범죄 피해자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녀는 우리 모두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사법 제도가 여성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젊은 여성만 피해를 겪는다는 통념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강간 문화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살아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그 거대한 폭력의 자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그 범죄의 잔인한 현실을 자각하고 일깨우는 데 있을 것이다. 충격적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인 70대 여성이 그 범죄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 신음하지 않고, 온 세상에 사건의 본질을 알리며 당당한 운동가로 거듭나는 모습은 일본군의 성범죄를 폭로해온 우리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과도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