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AI) 발전이 눈부신 지금, 기존 컴퓨터와 연산방식부터 다른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는 AI 학습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금융 분석에 사용될 경우 복잡한 시장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최근 뉴욕증시에선 한 양자컴퓨팅 기업이 한 달간 무려 131%에 달하는 주가 상승을 보이기도 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기술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양자기술을 전략기술로 지정했고,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한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양자기술산업법)’을 지난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양자컴퓨터란 무엇이며 세계가 왜 주목하는지 알아본다.

1. 양자컴퓨터란

양자컴퓨터는 양자 얽힘·중첩·텔레포테이션 등 양자역학을 이용해 문제를 처리 및 계산하는 컴퓨터다.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연산능력을 보유해 주목받고 있다. 원자와 아원자입자(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양성자·중성자 등의 입자) 등 현존하는 가장 작은 규모의 물질과 에너지의 행동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을 대입한 양자컴퓨터는 한 개의 처리장치에서 여러 계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보처리량·속도·정밀도가 압도적인 만큼,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계산·추론하는 AI에 활용하면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급속도로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양자컴퓨터의 연산능력으로 AI의 학습 과정을 더 빠르게 만들수록 AI는 통신·금융·의료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유의미한 계산 결과를 더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슈퍼컴퓨터와 차이점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우월한 연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작동 원리가 다르다. 일반적인 컴퓨터는 데이터를 0과 1로 구성된 숫자의 조합인 ‘비트(bit)’를 차례로 계산한다. 슈퍼컴퓨터는 수천에서 수만 개에 달하는 컴퓨터를 한꺼번에 가동해 연산속도를 높이는 ‘초고속·초대형 컴퓨터’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 얽힘과 중첩 등을 활용해 0과 1의 조합을 동시에 진행한다. 0이면서 동시에 1이기도 한 중첩 정보를 병렬 처리하는 덕분에 연산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최소 정보의 기본 단위를 컴퓨터와 슈퍼컴퓨터는 비트,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qubit)’라고 한다. 미국 물리학자인 존 프레스킬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양자컴퓨터의 연산 단위가 50큐비트를 넘어가면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양자 우위’를 달성한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3. 빅테크들의 관심은

세계 굴지의 빅테크들은 일찌감치 양자컴퓨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이 2019년 내놓은 ‘시카모어’가 대표적이다. 시카모어는 기존의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써서 1만 년이나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풀 수 있다. 시카모어에 이어 같은 해 중국과학기술대는 세계 두 번째 양자컴퓨터인 ‘지우장’을 선보였고 지난해 ‘지우장 3.0’이란 255광자 기반 프로토타입 양자컴퓨터를 구축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보다 문제 해결 속도가 1경 배 빠르다고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4월 양자컴퓨팅 기업인 퀀티넘과 함께 1만4000회 이상 오류 없이 작동하는 ‘논리적 큐비트’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4. 양자와 AI 결합한 ‘퀀텀 AI’란

양자와 AI를 결합한 ‘퀀텀 AI’ 개발에도 불이 붙었다. 양자컴퓨터의 빠른 연산능력으로 AI 모델을 학습시켜 의료·금융·물류 등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학계·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20∼2022년 퀀텀 AI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410만 건에 달한다. 구글은 2020년 ‘텐서플로 퀀텀’, MS는 지난해 ‘애저 퀀텀 코파일럿’을 각각 출시하는 등 이미 관련 서비스도 선보였다. 특히 퀀텀 AI는 기존 컴퓨터 대비 100만분의 1 수준의 에너지만 사용하기 때문에 AI발(發) 전력 대란의 해결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5. 양자컴퓨팅 숙제는

양자컴퓨팅 시대를 앞두고 전망되는 가장 큰 문제는 양자 잡음으로 인해 연산과 출력에 혼선이 발생하는 ‘양자 오류’다. 큐비트는 외부 영향에 취약해 잡음이나 오류가 쉽게 발생하는데, 큐비트 하나의 오류를 줄이더라도 시스템 규모가 커진다면 알고리즘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최근 구글이나 미국 하버드대 등 글로벌 기업과 연구 그룹은 양자컴퓨터의 실용성 제고를 위해 양자 오류정정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로, 키스트(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지난 8월 새로운 방식의 양자 오류정정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 특허 출원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보안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연산력이 뛰어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 현행 보안체계를 전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양자역학의 특성을 기반으로 하는 양자키분배기술, 양자내성암호 등 차세대 컴퓨터에 맞춘 차세대 보안 기술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6. 국내 기술 수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9월 4일 세계 최초로 광자방식의 8광자 큐비트 집적회로 칩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ETRI 연구진은 카이스트 및 이탈리아 트렌토대와 협력해 광자 4개를 제어할 수 있는 4큐비트 칩에서 2큐비트와 4큐비트 양자 얽힘을 구현한 바 있는데, 올해는 8큐비트로 확장한 것이다. 광자 기반 양자회로를 포함한 손톱 크기의 칩 여러 개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범용 양자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런 광자 기반 기술은 초전도체, 양자점 등 양자컴퓨터를 구축하는 여러 방법 중 유력한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TRI는 올해 중 16큐비트 칩 개발에 도전하고, 이후 32큐비트까지 성능을 확장할 계획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현재 20큐비트급의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구축한 상태로, 아직 실험용 수준이지만 올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개방한다. 2026년에는 50큐비트급 시스템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7. 정부 ‘양자과학 플래그십 프로젝트’

양자기술은 그간 경제성 검증 난항을 이유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정부 투자가 연기돼 왔다. 그러나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는 양자 분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의 예타를 면제하기로 해 내년부터 사업이 추진된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32년까지 1000큐비트급 고성능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양자인터넷 실증과 세계 최고 수준의 3가지 양자 센서 개발을 추진한다. 올해 4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양자 종합 전략 ‘퀀텀 이니셔티브’가 통과됐다. 정부는 2035년까지 양자 분야 핵심 인력을 2500명, 양자 활용·공급 기업 1200곳을 확보해 기술 수준을 이 분야 최선도국의 8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8. ‘양자기술산업법’으로 바뀌는 점

지난 1일부로 시행된 ‘양자기술산업법’은 정부가 양자과학기술 기반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법에 따르면 정부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양자전략위원회를 설치해 5년마다 범부처 차원의 양자종합계획을 수립한다. 정부는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내년엔 양자클러스터 기본계획을 수립, 기존 첨단산업과의 융합 및 산업 육성을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양자팹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담당 전문교육기관을 선정해 전 주기에 걸쳐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내용과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술사업화 촉진·전략적 국제협력 지원 등이 내용에 포함됐다.

9. 해외 각국 기술 경쟁 상황은

해외 각국은 양자과학기술이 대두되기 시작한 2010년 중반부터 전폭적 지원을 해왔다. 미국은 2008년부터 양자 개발을 추진했고, 2018년에는 양자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IBM·구글 등 빅테크가 주도하면서 미국이 우위를 선점했다. IBM은 2019년 27큐비트 수준이었지만 2023년 1121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구글의 53큐비트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릴 연산을 200초 만에 해냈다. 양자과학기술에 가장 많은 금액인 1000억 위안(약 19조 원)을 투자하며 ‘양자 굴기’를 외친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결과 중국은 지상과 위성을 포함해 유·무선 4600㎞ 길이의 양자통신망을 구축했고 올해 독자적으로 72큐비트 성능의 양자컴퓨터도 개발했다. 2006년부터 연간 525억 원을 투자해온 유럽은 양자과학기술에 2027년까지 10억 유로(약 1조5000억 원)를 추가 투자할 예정이다.

10. 미국, 양자컴 등 첨단 분야 대(對)중국 수출 통제

미국 정부는 내년 1월 2일부터 양자컴퓨팅, AI 등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제한한다. 미국 재무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명한 ‘행정명령 14105호’에 대한 의견 수렴 및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해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우려 국가’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로 규정돼 사실상 타깃이 중국임을 명확히 했다. 규칙에 따르면 미국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등이 첨단 반도체, AI, 양자컴퓨터 등 3대 첨단기술 분야에 대해 중국에 투자할 때, 재무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 자본으로 중국이 첨단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특히 AI와 양자컴퓨터 등은 포괄적으로 투자를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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