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닷컴 붐’을 이끌며 반도체 제왕으로 불려온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연일 위기를 겪으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인수대상으로 거론되는 등 시장 반응은 차갑다. 최근 주가는 2013년 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다우존스지수 퇴출설까지 나왔다. 뒤떨어진 인공지능(AI) 전략과 더불어 무사안일주의와 관료주의가 고착화된 기업 문화 등이 몰락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몰락하는 인텔 제국…인수 매물로 전락 = 인텔의 적자 규모는 올해 1분기 3억8100만 달러(약 5085억 원)에서 2분기 16억1100만 달러(2조1500억 원)로 불어났다. 급기야 인텔은 유럽의 주요 프로젝트들을 중단,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의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팻 겔싱어 CEO는 “가장 큰 규모의 인텔 구조조정”이라고 CNBC에 말했다. 하지만 일부 분석가와 전직 인텔 이사들은 2021년부터 겔싱어 CEO가 3년 넘게 지휘를 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미하고 늦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인텔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전 거래일보다 0.58% 떨어진 22.26달러(2만9700원)로 마감했다. 6개월 전과 비교하면 44.81% 떨어진 수준이다. 지난달 초에는 18.51달러를 찍어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외신들은 부진한 주가, 미비한 AI 분야 투자 등으로 인텔이 우량주 중심의 다우존스지수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연이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인텔이 다우존스지수에서 빠지면 주가에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인텔 시가총액은 950억 달러(127조 원)로 1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앉으며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에서 밀려났다. 인텔 시총은 2920억 달러에 달하던 2020년 1월 시총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엔비디아와 비교하면 2021년만 해도 인텔 매출이 세 배 규모로 컸지만 이제는 절반에 불과하다. 엔비디아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인텔을 대체할 종목으로 거론된다.
인텔은 인수 매물로까지 시장에 나오게 됐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퀄컴이 며칠간 인텔에 인수를 타진해 왔다고 보도했다. 주로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퀄컴은 PC용 반도체인 중앙처리장치(CPU) 제조에 특화된 인텔을 인수해 사업 지평을 대폭 확장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