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D램 지각변동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유지한 ‘D램 3강’ 과점 체제가 내년부터 깨질 게 유력해지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삼성전자(005930) 메모리사업부의 주요 내부 회의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 우한신신(XMC) 등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표 IT 기업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 움직임과 중국 특유의 애국소비 경향 등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업계 한 인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변화”라고 전했다. 최근 삼성 반도체 내부의 조치들이 ‘메모리 살리기’에 쏠리는 점은 이같은 상황 때문이다.
실제 중국 CXMT는 치킨게임 이후 2012년부터 굳어진 D램 3강 과점에 균열을 내고 있다. 키움증권 추정을 보면, CXMT의 내년 4분기 월 웨이퍼 기준 생산능력 점유율은 15.4%로 올해 4분기(11.8%)보다 3.6%포인트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마이크론(17.4%)과 맞먹는 수준이다. 난야(3.2%), 파워칩(2.2%) 등 5~6위에 위치한 대만 기업들이 해마다 2~3%대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이기도 하다. 1위 삼성전자(36.4%), 2위 SK하이닉스(24.1%)와는 여전히 차이가 크지만, 내년부터는 엄연한 4강 체제로 바뀌는 원년이 유력한 셈이다.
CXMT의 시장 영향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CXMT는 현재 범용 제품인 LPDDR4X와 DDR4를 통해 모바일과 PC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올해 4분기 LPDDR4X의 계약 가격만 유독 5~10%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이 나왔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 CXMT가 들어가지 않은 서버용 D램 시장은 가격이 계속 오를 전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D램은 칩 내부에 커패시터(capacitor) 같은 기술 난이도가 높은 장치가 있어 중국이 지난 수년간 뚫지 못했던 시장”이라며 “이제야 서서히 결실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IT업계 일각에서는 가전, TV 스마트폰,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한국 경제를 떠받치다시피 하는 ‘최후의 보루’ D램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중국의 D램 굴기는 기술에서 앞선 한국 업체 등으로부터 암암리에 숙련 인력을 영입하는 동시에 중국 정부가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연구부원장은 “반도체는 국가대항전이어서 한국도 보조금을 줄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고급 인력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한국경제인협회 대담에서 “반도체 지원을 단순히 개별 기업에 대한 혜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