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저작권법의 변천 과정과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는 현행 저작물 정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법적 정의 아래, 지난 10여 년간 게임 저작권 소송의 판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 법원은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방식, 전투 시스템과 퀘스트 진행 방식 등은 ‘게임 장르의 특성에 따른 당연한 표현’ 또는 ‘아이디어의 영역’이라며 저작권 보호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했다. 2002년 ‘포트리스2블루’, 2007년엔 ‘봄버맨’ 게임 표절 논란이 불거진 뒤 소송으로까지 이어졌으나, 당시 법원은 각각 게임들의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법원의 판결 경향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2019년엔 모바일 게임 ‘프레스트 매니아’가 ‘팜히어로’의 주요 구성요소, 시나리오, 창작적 표현형식 등을 그대로 표현하며 표절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다. 2022년 크래프톤과 넷이즈 간의 소송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시각적 표현의 유사성”까지 인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2006년 개정 이후 저작물의 정의는 변화가 없었음에도, 최근 법원은 게임 저작권 보호 범위를 점차 확대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게임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다. 과거 8비트, 16비트 시대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게임의 표현 방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2D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라면 캐릭터가 좌우로 이동하며 점프하고 공격하는 방식은 거의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언리얼 엔진5나 유니티 등 고도화된 게임 엔진의 등장으로 개발사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기술적 한계가 거의 사라졌다. 같은 장르의 게임이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중에서도 3D 그래픽 기술의 발전은 게임의 미적 표현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캐릭터의 외형과 움직임, 배경의 디테일, 전투 이펙트 등을 구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이는 곧 비슷한 장르의 게임이라도 얼마든지 차별화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이 “전체적인 느낌과 미감의 유사성” 같은 포괄적 요소를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된 것도 이러한 기술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주로 해외 게임을 수입하거나 서비스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배틀그라운드’ 등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게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규모 면에서도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4위에 달한다.
게임산업의 위상 제고는 자연스럽게 법조계의 인식 변화로도 이어졌다. 과거에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거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콘텐츠 산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관련 소송의 재판장에서 “게임산업의 경쟁력 보호”나 “창작 의욕 고취” 등의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게임의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법조계 전반에 퍼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판례들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게임의 저작물성 판단 기준이 개별 요소의 유사성에서 전체적 경험의 유사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둘째, 게임 장르의 일반적 특성이라는 항변이 더 이상 절대적인 방어 논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셋째, 기술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진 만큼, 유사한 표현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메타버스나 AI 게임처럼 새로운 형태의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저작권 보호의 범위와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국가별로 다른 저작권 기준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게임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주의도 필요하다. 저작권 보호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면 새로운 게임의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산업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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