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의 쟁점이었던 태평양증권의 사사(社史)에 관심이 쏠린다.

태평양증권은 1991년 SK그룹 전신인 선경그룹이 인수(2018년 매각)한 증권사다. 인수 당시엔 고(故) 최종현 선경 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의 현금 동원력이 화제가 됐다. 당대엔 최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인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혼 항소심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선경에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판결을 계기로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이 태평양증권 인수용으로 쓰인 것 아니냔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늘날에도 활동하고 있는 SK증권은 태평양증권의 후신이다. SK증권은 SK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라 SK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다. 분리 이후 그룹과 무관해졌지만 사명에는 SK를 사용해 왔다. 이에 ‘친 SK증권사’로 불린다.
선경의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엔 “최종현 회장, 자금동원 능력 대단하다”

5일 머니투데이가 SK증권의 공시와 과거 신문을 조회한 결과 최 회장은 1991년 12월 태평양화학그룹 측으로부터 태평양증권 주식 283만주를 주당2만200원에 571억6600만원 어치 장외에서 매수해 최대 주주(지분율 15.22%)에 올랐다. 자본시장 국제화를 의식해 금융업 진출이 필요했다는 게 당시 선경이 밝힌 태평양증권 인수 이유였다.

태평양증권은 국내에서 영업을 하는 31개 증권사 가운데 10~13위권(자본금 929억원)인 증권사였다. 1955년 신우증권으로 창립해 1963년 경신증권 1968년 동방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1973년 한국생사그룹에 인수됐다가 1989년엔 태평양증권이 사들인 증권사였다. 태평양증권은 선경그룹에 매각된 뒤 이름을 선경증권으로 바꿨다.

선경의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에 언론은 “최 회장의 자금 동원 능력이 재벌 총수답게 대단하다는 평” “어떻게 현금을 마련했는지 관심이 모아진다” 등 반응을 보였다. 당시에 선경그룹은 최 회장이 개인 소유 주식, 채권을 매각하고 은행 예금을 활용해 자금을 마련했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구체적 자금 확보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인수 대금이 거액이다보니 당시에도 자금 출처 관련 의혹은 제기됐다. 1992년3월 당시 선경증권을 이끌던 박도근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인수자금 571억원의 자금 출처를 밝힐 경우 더 큰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며 “주식을 매각했거나 부동산을 파는 등 방법으로 자금을 조성할 수 있지만 그 내역을 밝히면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노소영 관장 측은 지난달 30일 열린 최 회장과의 이혼 항소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선경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 등에 활용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300억원 비자금이 사용된 곳을 특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기여가 선경 그룹의 성장에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재판부가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재산 총액 4조115억원 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상태다. 반면 최 회장은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간 쌓아온 SK그룹의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어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며 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이에 이번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따라 그룹서 이탈…증권업계 ‘최장수 CEO’로 이목 쏠렸던 SK증권

선경증권은 1998년 사명을 SK증권으로 변경했으며 2015년엔 SK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매각 대상에 올랐다. SK증권은 2018년엔 사모펀드 J&W파트너스가 SK증권 지분 10%(3201만1720주)를 515억원에 인수하면서 SK 계열사에서 이탈했다.

다만 SK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상호명에 SK증권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SK증권은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SK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주관 업무를 대거 도맡아 증권업계에선 ‘친 SK증권사’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