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중국을 먼저 향하면서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국의 대중국 10%포인트 추가 관세 조치가 발효되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일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포함한 여러 보복 조치들을 쏟아냈다.
이날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관세법 등 관련법의 기본 원칙에 따라 국무원 승인 아래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일부 수입품에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도 텅스텐·텔루륨·비스무트·몰리브덴·인듐 등 핵심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텅스텐과 텔루륨은 반도체 산업 등에 많이 쓰이는 소재다.
그동안 미국에 수출되는 중국산 제품에는 평균 약 20%의 관세율이 적용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이제부터는 ‘모든’ 중국산 수입품들에 10%포인트 더 높은 평균 30%의 관세율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미 관세를 올린 중국의 전략산업 분야 중 전기차의 관세율은 100%에서 110%로, 전기차 리튬배터리와 배터리 부품 관세율은 25%에서 35%로 오른다.
태양광 웨이퍼 및 폴리실리콘 관세율은 50%에서 60%로, 텅스텐·알루미늄 등의 관세율도 25%에서 35%로 인상된다.
이와 함께 상무부는 타미힐피거와 캘빈클라인 등 유명 브랜드들을 산하에 둔 패션 기업 PVH그룹과 생명공학 업체 일루미나 등 미국 기업 2곳을 ‘신뢰할 수 없는 업체’ 명단에 올렸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도 이날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조치가 발효된 직후 나온 보복 조치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유사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비판하며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와 함께 재무부를 무역전쟁에 참여시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 상황에서도 협상단을 꾸리고 베이징과 워싱턴을 오가는 협상이 진행됐다.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불법이민과 마약을 명분으로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다만 극적의 타협 여지는 남아 있다.
중국이 보복 관세 부과 개시 시점을 10일로 상정한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중국과 관련해 “아마 24시간 내로 대화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펜타닐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시사한 것인 만큼, 극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 정상과 각각 통화한 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한 달간 유예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톱다운식 ‘협상의 기술’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시행을 예고했던 4일에 하루 앞선 3일 캐나다·멕시코 정상과 각각 통화한 뒤 관세 부과를 전격 보류했다. 특히 이날 오전 첫 통화 뒤 관세 유예를 받아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달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의 통화 끝에 트럼프 대통령의 보류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불법이민 차단, 마약 단속 강화에 캐나다·멕시코 정상들이 화답한 데 따른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에 △마약 문제를 담당하는 ‘펜타닐 차르’ 임명 △국경 강화 계획에 13억달러 투입 △국경에 마약 차단을 위한 인력 1만명 유지 △마약 범죄 조직을 테러리스트로 지정 △마약 및 범죄, 돈세탁 대응을 위한 양국 합동 타격 부대(Joint Strike Force) 발족 등을 약속했다. 멕시코는 마약 및 불법이주민 단속을 위해 국경 지역에 1만명의 군인 파견 등의 방침을 밝혔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 계정에 “멕시코는 미국으로의 마약 펜타닐 밀매를 차단하기 위해 1만명의 국가방위대원을 국경에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코드’를 맞춰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와의 ‘2차 통화’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통화가 매우 잘 진행됐다”고 말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트뤼도 총리는 자신의 X 계정에 글을 올려 “나는 방금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통화를 했다”며 “제안된 관세는 우리가 함께 노력하는 동안 최소 30일간 유예된다”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펜타닐 차르’를 신설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며, 조직범죄와 펜타닐·자금세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캐나다 합동 타격 부대를 출범시킬 것”이라면서 “조직범죄와 펜타닐과 관련한 새로운 정보지침에 서명했고, 여기에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관세 부과 결정이 애초부터 집행 의지보다는 ‘극한의 압박’ 의미가 더 컸다는 분석과 함께 부과 결정 이후 제기된 글로벌 관세전쟁에 따른 미국 경제 타격 등 각종 우려 요인들에 대비할 시간을 벌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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