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몇 살에 하면 가장 재밌을까? 50대에 대학원에 들어가 영화와 미학을 공부하는 조균래(박사과정)를 보면, 새로운 걸 배우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30대 중반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어떤지 물었다.
“일할 땐 고객 만족을 최우선했는데, 지금은 결과물의 판단 기준이 내가 만족할 수 있냐로 바뀌어 즐거워. 공부하고 작업하는 일상이 참 좋은데 이걸 유지하기도 쉽지는 않아. 예를 들면 오늘 내가 뭘 공부해서 새로운 걸 알게 되니 너무 좋아. 그런데 내일은 더 이상 새롭거나 좋지 않아. 그러기 위해선 또 공부해야지. 그래야 새롭고 좋은 게 나올 테니까. 지속적으로 공부하려면 체력도 필요하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그 안에서 우린 선택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사진 작업을 하고 단편영화를 만든 그는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과 달리 영화는 자본의 선택을 받아야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야. 그런데 AI를 활용하면 자본이 없어도 가능해. 특정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특권주의라면 AI 덕에 누구든지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거지. 하지만 미국 할리우드에서 작가 노동조합이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파업한 것처럼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 이 사람들이 밀려나지 않게 재교육과 규제 등이 필요한데 사실 그것도 자본이 결정하거든.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회사가 AI를 개발했다면 그 회사가 이윤을 다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인공지능은 몇 개 회사가 잘나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적 활동이 뭉쳐져 나온 거니까.”
누군가 ‘신박한’ 기술을 개발했으면 비싸게 파는 게 당연한 세상, 하지만 이런 논리로 가다보면 세계가 비참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생명공학 발달로 지금의 상식,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죽는다’는 공평함도 파괴되는 날이 올 테고, 그 과정에서 다시 기준을 세우려는 사람들과 지금 기준을 고수하려는 사람들 간 싸움이 인류 마지막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데…. 이런 흐름을 관찰하며 예술에 접목해보는 게 작가로서 그의 목표다.
“내가 작가인지는 모르겠어. 유명한 작업을 한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소소하게 사진 전시를 하고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니까. 더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나는 이런 작은 창작 활동들이 가치 있다고 봐. 예술이 기존에 없는 걸 새로 만들거나 새롭게 보여주고 즐기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린 예술계 내에서도 만들어진 위계를 따라가. 저게 진짜야, 난 진짜배기만 볼래…. 관심 없다가도 누가 거장이라고 하면 보고. 그런 걸 깨부수는 게 또 예술이어야 하거든. 처음부터 저 사람은 저런 거 할 수 있고 나는 보기만 하는 사람, 이렇게 구분된 사회보다는 누구든지 예술을 하고 그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게 좋은 사회라고 봐. 물론 나 역시 구별짓기에서 자유롭지 않아. 하지만 이게 한 번에 안 허물어진다고 해서 처음부터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사는 세계하고, 조금씩이라도 바뀌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시선으로 사는 건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