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하기 위해 북한군이 포함된 전투 부대를 창설했다고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에 투입되는 북한군 규모가 1만명에 달하고, 이들 중 일부가 탈영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같은 군사 협력은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때 양측이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새 북·러 조약)’에 따른 조치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포스트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북한군으로 구성된 부대를 별도 창설했다고 밝혔다. 해당 부대는 제11공수강습여단 소속의 ‘부랴트 특수대대’로, 북한 군인은 최대 3000명 가량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부랴트는 러시아의 아시아계 소수민족으로,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 부대가 이들 부랴트족 신분증을 발급 받았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키이우포스트는 해당 대대의 북한 병력은 이미 소형 무기와 탄약을 보급받고 있으며, 쿠르스크주(州)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쿠르스크는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인 러시아 본토로, 러시아군은 이들을 밀어내기 위해 격전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군 장교는 매체에 “북한군은 러시아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험 부담이 큰 전선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지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도 서방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에 약 1만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고 전했다. 이 군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등은 불분명하다는 관측이 있으나, 이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근처에 배치될 예정이며 현재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훈련받고 있다는 또 다른 보도도 이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16일 의회에 출석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뿐 아니라 인력도 공급하고 있는 사실을 정보기관이 확인했다”며 “북한 인력은 러시아 공장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군에도 보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이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두 번째 국가가 참여하는 것”이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범죄자 동맹에는 북한이 이미 연루돼있다”고 덧붙였다.

북한군이 이미 전장에 투입됐으며, 이들 중 일부가 집단 탈영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날 우크라이나 수스필네통신은 익명의 정보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쿠르스크와 브랸스크주의 국경 지대에 배치된 북한군 중 18명이 집단 탈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탈영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러시아군들이 이들의 행방을 쫓는 중이라고 전했다. 매체는 러시아 지휘관들이 북한군의 탈영 사실을 상관에게 숨기려 했다고도 보도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은 처음 포착된 게 아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보국은 지난 3일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근처에서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러시아와 협력하는 군인 2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중 6명이 북한군 장교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탄도 미사일의 운용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군 기술 관련 인력으로 추정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13‧14일 잇따라 북한군 인력이 전장에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설은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있다.

지난 6월 북러 조약의 후속 조치 가능성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이라면, 이는 지난 6월 19일 푸틴의 방북 때 맺은 새 조약에 따른 것일 수 있다. 북·러 조약 제4조에는 “쌍방중 어느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다른 쪽이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됐다.

러시아가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인 쿠르스크주로 진격한 것을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로 해석했다면 이를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 요청의 근거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용현 국방장관 역시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정규군 파견 문제는 러시아와 북한이 거의 군사동맹에 버금가는 상호 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파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전투병 파병이 실제 이뤄지는 수순으로 본다는 의미다.

다만 북‧러 조약은 아직 양국에서 모두 비준·발효되지 않았다. 조약 전문에는 ‘이 조약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부터 무기한 효력을 가진다’고 돼 있다. 러시아에선 푸틴이 지난 14일 조약 비준에 관한 법안을 하원(국가두마)에 제출해, 비준 절차가 진행 중이다. 북한에선 이달 7일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으나 비준 여부에 대한 보도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북한에서는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조약을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김정은 독단으로 조약을 비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러는 추가 징집 부담 덜고, 북은 외화벌이북한군 파병설이 힘을 얻는 이유는 러시아와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 국면에서 추가 징집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을 북한군 파병을 통해 덜어낼 수 있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선에 장기간 동원된 러시아 예비군들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간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겐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북한은 전장의 군인뿐 아니라, 러시아 점령지의 인프라 재건을 위한 노동자도 파견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지난 4월 북한은 돈바스 지역의 재건을 위해 150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이 같은 밀착에 미국은 “매우 우려스럽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 소통보좌관은 이날 북한군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병력을 파병했다는 보도에 대해 “북한 군인이 러시아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북·러 국방 관계의 상당한 강화를 보여준다”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