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자정, 서울 삼성역 지하철 2호선 1번 출구 앞. 카카오T 앱에서 목적지인 도곡역을 입력하자 호출 가능 택시 목록에 ‘서울자율차’가 떴다. 호출 후 10분을 기다리니 차량 앞과 위에 라이다(LiDAR·자율주행 보조장치)를 단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SWM 기술로 운행하는 자율주행택시였다.
이날 목적지까지 3.5㎞를 운행하는 10여분 간, 차량은 시속 50㎞ 속도를 지키며 운행했다. 급하게 끼어드는 차량이 있을 때는 알아서 멈췄고, 신호도 철저하게 준수했다. 다만 현행법 상 사람이 꼭 운전해야 하는 어린이 보호구역, 계속 차량이 다가와 차선 변경이 어려울 구간에선 기사 석에 앉아있던 ‘안전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았다. 일부 구간에선 최대 속도인 시속 50㎞를 지키는 데에 답답함을 표현하듯 뒤에서 달리던 택시가 경적을 울리며 추월하기도 했다.
기술 개발을 선도해야 할 국내 모빌리티 기업들은 아직까진 자율주행 기술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2년부터 자동차에 탑재하는 운영체제(OS)를 포함해 각종 소프트웨어(SW)를 망라하는 ‘SDV(Software Driven Vehicle)’ 전반에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전념하기는 어려운 상황. 레벨 4 이상 기술은 2020년 미국에 설립한 합작 스타트업 ‘모셔널’에서 연구하고 있지만, 이들은 지난 5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제품 상용화를 미루고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모빌리티 플랫폼 대표 주자 카카오모빌리티는 다른 자율주행차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카카오모빌리티가 진행했던 7건의 자율주행 시범서비스 중 한 건(판교 자율주행차 시범서비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기업이 개발한 자율주행차를 플랫폼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장성욱 카카오모빌리티 부사장은 “로보택시를 소비자와 연결하고 매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정한 제한 구역 내에서만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은 자율주행 서비스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는 서울시 상암동 등을 포함해 전국 34곳이다. 서울시 강남구 등 운행지구 6곳은 2022년 사업 운행결과 최하등급인 ‘E 등급’을 받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기존 계획과 달리, 시범 서비스를 하겠다는 기업의 기술수준이 너무 낮아 사업 자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도 있다. 2017년 창업한 마스오토는 지난달 말 기준 국내 9대의 자율주행 화물차를 운영중이다. CJ대한통운과 이마트24 등 유통기업의 ‘미들마일(원자재나 완성품을 물류창고로 옮기는 단계)’ 물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노제경 마스오토 부사장은 “화물차 한 대당 국내는 약 1억원의 매출이 발생한다”며 “현재 기술로는 고속도로에서만 화물차가 자율주행으로 운행하지만, 앞으로 모든 구간을 자율주행으로 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018년 현대차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4명이 공동창업한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충청권 자율주행 버스(세종시), 인천국제공항 장기주차장 자율주행 셔틀버스(인천시), 주야로 자율주행 버스(안양시) 등 주로 대중교통에 집중하며 기회를 만들고 있다. 노선이 정해진 대중교통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만들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상무는 “한국 법령상 (당분간) 대중교통과 물류사업 목적으로만 자율주행차량을 판매할 수 있기에, 국내 자율주행시장은 B2B(기업 간 거래)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