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난임이야? 와….”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모두 다 난임이에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아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쾌적한 온도와 습도, 따뜻한 채도의 조명이 쏟아지는 이곳 난임병원은 보이는 것만큼 따뜻하지만은 않다. 처음 온 사람들은 매번 이렇게나 많은 난임 여성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압도당한다. 엄마 또는 언니로 보이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여성도 아마 놀랐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고 누구라도 그러할 테니까.

보이는 것보다 더 많아요

온라인·모바일 뱅킹이 되지 않던 시절의 은행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번호표를 뽑고 창구 직원을 기다리는 고객처럼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차이가 있다면 난임병원 고객은 모두 다 또래 여성이라는 점이다. 대기 명단에 여섯 자리 생년월일 중 맨 앞자리 수가 보이지 않고, 이름 석 자 중 가운데 글자는 지웠지만 1980~1990년대 중반 태어난 30~40대 여성이 대부분이다.

난임병원을 다닌 지 1년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다섯 차례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내게 병원은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 돼가고 있다. 동네에 소문난 난임병원을 거쳐, 전국의 여성이 모이는 대형 난임병원까지 찾아왔다. 3~5분 만에 끝나는 의사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2시간가량 기다려야 하는 곳.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여성, 온라인으로 화상미팅을 하는 여성, 직장에 가야 해서 예약 시간을 당겨달라고 사정하는 여성, 첫째 아이를 데려온 여성, 엄마와 함께 온 여성, 휴대전화로 게임하는 남편, 아내 심기를 살피고 위로하는 남편 등 다양한 삶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이곳에 우리의 마음이, 모든 시간과 미래가 수개월 또는 수년씩 묶여 있다.

의료진이 인정하는 원인 불명의 난임 여성이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내 무지함이었다. 나는 피임하지 않으면 임신이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큰 병치레 없이 자랐고 직장 건강검진에서도 특이사항이 별로 없었다. 그게 젊은 나이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음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나 직장 건강검진에 포함된 ‘자궁경부암’ 검사만 하면 부인과 질환은 다 예방되는 줄 알았다.

자궁과 난소 건강 챙기는 법 언제 배우나

난임병원을 찾는 여성은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난임이라는 결과지를 받아들게 된다. 나이가 젊어도 자궁과 난소의 다양한 병변으로 임신이 어려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경우엔 결혼하고 2년 뒤, 3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남편과 임신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처음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질 초음파를 본 의사는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를 알려주면서도 나이를 고려해 난임병원도 가볼 것을 추천했다. 내 질환은 ‘다발성 자궁근종’이었다. 근종이 있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임신과 출산에는 매우 불리했다.

만약 임신과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근종이 내 자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좀더 미리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을 마음먹고 나서야 산전 검사를 하는 건 나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자궁과 난소 건강을 챙기라고 배운 적이 없었다. 나의 무지함을 핑계로 사회의 무지함을 탓하는 것은 과도한 비난일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마치 언젠가 닥쳐올 형벌 집행 시간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처럼 외롭고 무겁다.

난임이 젠더 문제인 일차적 이유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점이다. 내 주변만 봐도 정말 많은 여성이 고독한 치료 과정을 겪고 있다. 직장 상사는 물론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난임병원에서 동료를 2명이나 만났다. 이미 그 병원을 거쳐간 친구, 선배도 여러 명이다. 여성 연예인들이 난임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응원해달라며 유튜브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난임 치료 과정을 (비록 광고일 수도 있지만) 대중에게 공개하는 이유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이 매우 고독하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졸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우수수 떨어진다.

치료 부작용도 우려된다. 내 배에는 자궁근종과 폴립 등을 제거한 복강경 수술 자국 4곳이 선명하다. “비키니 수영복은 못 입어”라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배에 구멍을 낸 뒤 생긴 색소침착 자국 사이로는 얇은 자가 주사를 수백 번도 넘게 찔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피검사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바늘이 몸을 찌르는 느낌은 이제 너무 익숙하게 참고 견딘다. 호르몬 성분의 약을 수시로 주사하다보니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외로움과 절망감이 약 성분 때문에 발현된 것인지 정말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시로 눈물이 나고 수시로 화가 난다.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해 처방한 약이 내 몸에서는 이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을 국외 직구로 구입해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으나 그 약을 먹은 뒤 정상 수치의 3배가 넘는 호르몬 부작용이 생겨 몇 달째 고생 중이다.

원인 불명 난임을 졸업하는 고독한 길

“일찍 결혼했어야지. 늦게 나와 결혼해서 고생이 많네.”

남편이 위로하듯 자주 이 말을 한다. 남편, 시댁, 친정 누구도 출산 압박을 주지 않는데, 난임 여성인 내가 병원만 다녀오면 동굴로 숨어드니 멋쩍어 하는 말이겠지만, 늦은 결혼이 문제였다. 둘 다 30대 중반이 돼서야 결혼했다. 만혼 추세는 쉽게 달라지지 않을 텐데,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한 난임은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늦은 결혼과 임신을 하는 우리도 할 말이 많다. 고단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청소년기가 유예된 듯한 청년기를 보내지 않는 대한민국 청년이 있을까.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 졸업이 늦어졌고 운 나쁘면 취업도 1~2년가량 늦어진다. 사회생활의 출발이 늦어서기도 하지만 신혼집 구하기가 벅차 결혼에 확신이 없는 청춘이 너무 많다. 회사 부장님들은 30대 초반에 애를 낳았다면, 지금 대리들은 30대 중반에야 겨우 결혼한다. 결혼은 더 늦어졌고 출산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돌아보니 그냥 하루하루 눈앞에 떨어진 일들, 치열한 회사 생활을 버티느라 온 힘을 다 썼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은 임신·출산에 기여도가 매우 낮다. 이 때문에 같은 나이라면 남성은 난임 판정을 받는 비율이 더 낮다. 그러나 40대 이후 남성의 경우 술, 담배, 야근 등으로 인한 난임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살아남느라 에너지를 다 쓴 여성과 남성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또 한 번 온 힘을 다해야 하는데 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누가 늦게 결혼하고, 늦게 임신하래?’라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식의 폭력적 말을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난임은 출발이 늦어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끔 나도 마음이 날씨처럼 오락가락한다. 눈물 콧물 다 흘리게 하는 난임 도전기를 들은 ‘딩크’(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인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포기는 안 되는 거지?”

폭염과 폭우가 점점 심해지는 지구에 또 하나의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해도 되는 일인지, 어릴 때야 귀엽고 사랑스럽겠지만 초등학생만 돼도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이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현실적 고민을 숱하게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고민을 감당할 수 있는지, 나는 좋은 부모 자격이 있는지 등등 현실적 고민은 일단 난임이라는 장벽을 넘고 생각해야 할 부차적 주제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인 이들도 있다.

난임 가정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23년 5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난임 시술을 받은 환자 수는 14만458명, 1명당 진료비 평균은 184만4354원이었다. 남성 1명당 평균은 21만3812원, 여성 1명당 평균은 321만4829원이었다. 40대 난임 시술 환자는 지난 5년 동안 1만6천여 명이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난임 시술 환자 수는 27명이었다.

저출생 시대, 난임을 말해야 하는 이유

단지 난임 치료에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다. 임신한 여성의 9~10개월도 신체적 자유는 없다. 난임 여성 역시 시술받는 동안 신체적 자유가 없을뿐더러 정신적 자유도 없다. 난임이라는 질환을 겪는다고 말할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고, 말한다고 해도 직장 내 차별과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과 차별은 난임을 둘러싼 직장, 가정, 의료 현장과 여성의 몸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다. 저출생 시대에 난임 여성과 난임 부부를 위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를, 이 공간을 통해 말하고 싶다.

난임여성 A

*우리들의 난임일기: 난임여성 A는 대학 졸업 뒤 사회생활 17년차가 된 서울 거주 여성입니다. 직업은 기자입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1년5개월가량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난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난임은 젠더, 의료, 인구 문제와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입니다. 난임 여성이 회사, 가정, 병원에서 겪는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