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직접 뽑은 다수당을 헌법재판소가 해산했지만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2024년 8월12일 한겨레21과 만난 차노끄난 루암삽(31)이 담담하게 말했다. 5일 전이었던 8월7일 타이 헌법재판소는 전진당(까오끌라이)의 해산을 명령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헌법재판관 9명은 만장일치로 전진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피타 림짜른랏(43) 전 전진당 대표 등 당의 전현직 지도부 11명의 정치 활동을 향후 10년간 금지했다. 헌재는 앞선 지난 1월 전진당의 ‘왕실모독죄’(형법 제112조) 개정 공약이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에 해당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진보정당 승리에도 무산된 고국행

차노끄난은 2018년 1월, 전진당이 개정을 추진한 왕실모독죄 위반 혐의를 받고 타이를 떠나 한국으로 망명했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정권을 잡아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는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수차례 타이의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집회를 주최했다. 2016년 12월3일, 타이의 현 국왕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의 여성 편력, 도박, 사치, 불법 사업 등의 의혹을 다룬 영국의 비비시(BBC) 기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는 혐의를 받아 구속 위기에 놓였다. 왕실을 모독해 형법 제112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다. 한겨레21은 2018년 6월 제1214호 표지이야기 ‘민주천사 난민을 한국은 안아줄 수 있을까’에서 그의 망명 과정을 심층 보도했 다 .

차노끄난은 2023년 5월 타이 총선에서 피타 전 대표가 이끄는 전진당이 하원의석 151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1당이 될 때까지만 해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오렌지당(전진당)의 의원과 당직자 대부분이 과거 타이에서 활동하고 시위를 조직했던 동지들이기 때문에 피타가 총리가 되고, 내각을 구성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나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차노끄난이 말했다.

하지만 피타는 2023년 7월 총리 선출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상원 13표, 하원 311표 등 324표를 얻는 데 그쳐 고배를 마셨다. 타이에선 상원의원(250명)과 하원의원(500명) 과반(376표)의 지지가 있어야 총리가 될 수 있다. 피타의 총리 선출이 불발되자, 원내 2당이었던 타이공헌당(프아타이)이 10개 보수정당과 연합해 부동산 재벌 출신인 세타 타위신(62)을 총리에 임명했다. 탁신 전 총리 계열로 전진당과 손잡을 것처럼 보였던 타이공헌당은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등 개혁안에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결국 등을 돌렸다.

전진당이 내각 구성에 실패하면서, 차노끄난의 ‘고국행’ 꿈도 물거품이 됐다. 2021년 가을부터 스웨덴 말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차노끄난이 고국을 떠난 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스물다섯 나이에 망명길에 올랐던 그는 이제 30대가 됐다. 최근 건강이 악화된 부모의 돌봄 걱정에 그리움은 더 커졌으나, 돌아갈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타이 전진당 로고(왼쪽)와 인민당 로고(오른쪽).

왕실 밑 사법부, 34번의 헌재 쿠데타

차노끄난이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놀라지 않았던 것은 이미 2020년에 헌재가 전진당의 전신인 미래전진당(아나콧마이)을 해산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총선에서 미래전진당은 쁘라윳 전 총리의 군부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하원의원 81명을 당선시켜 원내 3당이 됐다. 하지만 헌재는 2020년 2월, 당대표였던 타나톤 쯩룽르앙낏이 정당에 돈을 빌려준 사실이 정당법 위반 혐의에 해당한다며 타나톤의 정치활동을 10년간 금지하고, 미래전진당을 해산했다.

1997년 세워진 헌재는 헌법개정으로 지금의 모습(9명 헌법재판관)을 갖춘 2006년 이후 무려 34개의 정당을 해산했다. 2024년 전진당 해산과 마찬가지로, 진보 계열 정당이 군부와 왕정을 지지하는 보수파에 밉보여 해산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한국과 달리 타이에선 왕실이 상원의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관을 임명한다.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상원의원을 장악하기 쉽도록 201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재가 독단적인 군부와 왕정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더욱 잦아졌다. 타이 국민의 민의는 철저히 무시됐다. 선왕으로 추앙받았던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이 2016년 10월 세상을 떠나고, 후계자로 왕위에 오른 마하 와치랄롱꼰이 선친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것도 왕실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응축됐던 민중의 불만은 2020년 미래전진당의 해산 이후 터져나왔다. 2020년은 코로나19가 유행했던 공중보건 위기의 시기였으나, 타이의 대학생들과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타이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군주제 개혁’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2020년 8월3일 인권변호사인 아논 남파(40)가 시위에서 공개적으로 “왕실모독죄를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이후 타이의 민심은 더욱 들끓었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로 타이에선 누구도 공개적으로 왕정개혁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타이에서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1970년대에도 시위대는 감히 ‘왕정개혁’을 입에 올리지 못했었다. 아논은 해당 발언으로 형사법정에 넘겨져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타이 헌재는 왕실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타이인권변호사협회는 미래전진당 해산 이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2020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1297개의 정치 사건에서 1954명이 기소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왕실모독죄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272명에 이른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선임연구원 수나이 파숙은 영국 언론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타이의 법원은 주권이 국민이 아니라 군주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타이의 입헌군주제 통치를 끝내고, 절대주의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며 “타이 사법부의 이러한 인권 탄압은 본질적으로 ‘사법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2024년 8월12일 한겨레21과 만난 차노끄난 루암삽. 이재호 기자

타이 진보 세력의 끝나지 않은 전진

사법부의 노골적인 탄압에도 타이 민중은 굴복하지 않았다.

2020년 헌재가 정당을 해산하자, 미래전진당 의원 55명은 전진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활동을 계속했다. 전진당은 군주제 개혁과 왕실모독죄 개정 요구를 계속했고, 시민들은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2023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됐다. 왕정에 대한 ‘진보정당 도전 시즌2’인 셈이다. 이마저도 헌재의 정당 해산으로 좌절됐지만, 전진당은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2020년과 같은 격렬한 거리 시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8월7일 헌재의 정당 해산 발표 이후 피타 전 전진당 대표는 당사에서 연설했다. “여러분이 실망하고, 화내고,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 이해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슬퍼하고 분노합시다. 하지만 내일 우리는 우리 앞에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가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아 투표소에서 폭발케 할 것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전진당 의원들과 주황색(전진당 상징색) 옷을 입은 지지자들은 피타의 연설에 “전진, 행진”을 외치며 호응했다. 전진당 지지자들은 평화롭게 집회를 마치고 경찰과 충돌 없이 해산했다.

이틀 뒤인 8월9일 전진당 의원 143명은 인민당(팍 쁘라차촌)을 창당해 당적을 옮겼다. 인민당의 로고는 전진당과 마찬가지로 주황색 역삼각형이다. 모든 것은 헌재가 정당 해산을 발표하기 전부터 준비돼 있었던 듯 보였다. 1932년 혁명으로 절대왕정을 무너트리고, 입헌군주제 개혁을 실시했던 세력도 ‘인민당’이었는데 같은 이름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개혁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나타퐁 릉빠냐웃(37) 인민당 대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국민은 국가를 통치하는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당이 될 것이며 최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타이를 만들겠다”고 창당 연설에서 밝혔다. 인민당은 2027년 총선에서 다수 정당이 돼 단독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타이 시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현지 언론 방콕포스트 보도를 보면, 인민당은 창당 뒤 하루 만에 신규 당원 가입이 4만 명 늘었고, 8월 말까지 목표로 삼았던 당비 1천만밧(약 3억9천만원) 모금을 9시간 만에 달성했다. 방콕에 사는 파타라몬은 한겨레21에 “헌재의 이번 결정은 타이 사법부가 왕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인민당은 이틀 동안 2천만밧의 후원금을 모았는데, 타이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민당은 전진당의 뜻을 계승해 왕실모독죄 개정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이자 인민당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현시내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는 “2020년 이후 타이에서 왕실에 저항하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민주화운동의 핵심은 젊은 세대였는데, 이들은 빈부격차와 사회문제의 핵심이 타이식 왕정(봉건주의)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왕실 개혁을 요구할 정도로 급진화했다”며 “결국 진보 성향의 젊은 세대가 계속해서 유권자로 편입되기 때문에 타이의 시간은 민주주의 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왕실·군부 기득권 저항 넘을 수 있을까

하지만 타이 왕실도 왕실모독죄 개정만큼은 절대 수용하지 않고 저항할 것으로 보여 정치 상황은 한동안 혼란을 거듭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타이 헌재는 8월14일 세타 타위신 총리의 해임을 결정했다. 세타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측근인 피칫 추엔반을 지난 4월 총리실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과거 ‘뇌물 스캔들’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피칫을 장관에 임명한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타이에서는 정국이 혼란할 때면 군부가 수시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역사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타이 안팎에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타이에선 22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고 이 가운데 13차례나 성공하면서 정권을 잡았다. 총선 주기인 4년마다 쿠데타가 일어난 셈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쁘라윳 전 총리가 2023년 말 국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 위원에 임명된 사실도 불안 요소다. 왕실이 다시 늙은 군인을 끌어들여 현 상황을 돌파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타이 시민들은 사법 쿠데타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군부 쿠데타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까? 차노끄난은 언제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을까?